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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라
Closet
작년 가을에 하나씩 없어지던 게 다 거기 있었어요. 검정 두 개 갈색 하나 그리고 제일 아끼던 벽돌색... 벗어주면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고 하는데 그럼 왜 돌려줄 생각은 안 났는지 모르겠어요.
이 사람이 새 직장 첫날이라 일요일 밤에 회색 슬랙스랑 진한 남색 셔츠를 걸어놨습니다. 남색이 얼굴을 정리해주는 편이라 아침에 뭘 못 고르는 사람한테는 그게 제일 안전하거든요... 그런데 일어나 보니 검정 바지에 검정 셔츠를 입고 서 있더군요. 뭐 그렇습니다, 다녀와서 물어보니 아무도 옷 얘기를 안 했다고 하네요.
주말에 둘이 나갈 일이 있어서 오늘 미리 맞춰봤어요. 저는 오트밀 셔츠에 진한 남색 팬츠였고 이 사람은 그냥 회색이었는데, 나란히 서니까 회색이 제 셔츠를 잡아먹더라고요... 결국 이 사람 상의만 남색으로 바꿨더니 둘 다 조용해졌습니다. 주말까지는 이걸로 갑니다.
어릴 때 할머니가 어깨에 붙은 실을 떼면서 늘 그러셨거든요. 그 말이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데, 오늘 아침에 이 사람 어깨에서 실을 떼면서 저도 모르게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... 좋은 소식은 아직 안 왔고요. 뭐 그렇습니다
이 사람은 늘 105를 입는다는데 그 집은 XL이 제일 크고, 옆 집은 105가 있는데 소매가 짧더라고요... 결국 둘 다 안 사고 커피만 마시다 왔습니다. 옷값이 커피값으로 바뀐 하루였네요.
지난주에 저는 인터넷으로, 이 사람은 퇴근길에 각자 산 건데 오늘 아침에 둘 다 그걸 꺼내 입고 마주 섰습니다. 색이 문제가 아니라 톤이 똑같았어요... 겨자보다 조금 죽은, 말하자면 오래 쓴 놋그릇 같은 색. 결국 제가 갈아입었는데 왜 제가 갈아입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.
아침이 선선하길래 얇은 겉옷을 걸쳤는데 하필 안에 입은 게 파란 티라 계속 걸리더라고요. 두 번 바꾸고 세 번째로 돌아왔는데 그게 처음에 입었던 그거였습니다. 이 사람은 그새 나가버렸고 저는 택시를 탔어요. 택시비가 그 겉옷값의 십분의 일쯤 되니까 뭐 그런대로... 아니 이건 계산이 안 맞네요.
제 장바구니를 보더니 색이 다 비슷하다면서 자기가 하나 담아 결제해버렸어요. 받았을 땐 이게 무슨 색인가 싶었는데 아침 공기가 서늘해지니까 이상하게 잘 붙더라고요... 결론은 아직 안 났고 오늘 하루는 괜찮았습니다
베이지 반바지인데 끈만 형광에 가까운 초록이라 묶는 순간 거기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... 안 쓰는 검정 후드에서 끈을 빼서 옷핀에 매달아 통째로 갈아 꿰었습니다. 색 하나 죽였을 뿐인데 같은 바지가 아닌 것 같고요. 이 사람은 뭐가 달라졌냐고 세 번 물어봤습니다.
옷장은 하나고 칸도 안 나눠 썼는데 이상하게 이 사람 셔츠 쪽만 그렇습니다... 저는 밝은 색이 많고 이 사람은 죄다 남색 회색이라 혹시 색인가 싶어서 자리를 바꿔 걸어도 봤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. 결론은 아직 없고 이번 주말에 칸을 나눠볼까 합니다.
건조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 아주머니가 수건을 세 번 접어서 탑처럼 쌓으시더라고요. 제가 개면 늘 한쪽이 삐죽 나오는데 그건 각이 살아 있었어요. 이 사람한테 말했더니 그럼 배워오라고 하네요. 다음주에 또 갈 겁니다
시즌오프 마지막 주라 나갔다가 초록색 셔츠 하나를 삼십 분쯤 들고 있었어요. 이 사람은 옆에서 그 색은 얼굴이 죽는다고 계속 그러고... 결국 검정으로 바꿔서 계산했는데 집에 오는 차 안에서부터 초록 생각만 났습니다. 뭐 그렇습니다.